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상무 피닉스 야구단 (문단 편집) === 국군체육부대 창설 이후 ===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후에 [[1984년]] 상무가 창설되며 성무도 상무에 합병되어 결국 각 군에 있던 야구팀들이 상무로 흡수, 합병되었다. 한때 실업리그가 남아있던 시절에는 실업리그에 참가해 프로선수들을 안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프로에 바로 가면 상무로 갈 수 없기에 상무 입대를 먼저 하고[* 대표적인 경우가 고려대를 졸업하고 2년간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한 뒤 롯데에 입단한 [[마해영]].] 제대 후 프로로 가려는 선수들도 좀 있었다. 그러나 프로선수 입장에서는 군입대를 하게 될 경우 반강제로 3년의 공백기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에 상무가 프로선수들의 입대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상수]], [[양세종(야구선수)|양세종]], [[최계훈]] 등이 군입대로 인한 공백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한 대표적인 사례다.][* 게다가 축구는 당시에도 프로선수의 상무 입대가 가능했다. 사실 행정적 문제였을 수도 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스포츠 행정 측면으로는 아마야구와 프로야구는 사실상 다른 종목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경기 방식이나 규칙이야 거의 차이는 없었지만 행정상으론 달랐단 말이다. 아마야구 선수가 프로로 전향한다는 것은 사실상 대한야구협회로부터 영구제명이란 징계를 받는 것을 의미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대한야구협회와 완전히 무관했으므로 이 징계는 '다른 종목'인 프로야구에선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면 아마축구와 프로축구는 그렇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의 '축구'를 총괄하는 기구지 '아마축구'만 총괄하는 기구가 아니었다.] 그러다 1998년 말 프로선수 5명의 입대를 허용[* 원래는 아마야구 선수만 받는다는 조항을 삭제, 프로선수들도 얼마든지 선발할 수 있게 되었으나 기존 아마야구 감독들의 반발로 5명만 뽑는 걸로 결정했다.]하게 되었고, 그 사이 몇몇 프로선수들의 병역비리가 구설수에 오르자 KBO의 요청으로 1년 후에는 프로선수도 얼마든지 선발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2000년에는 실업리그[* 한때에는 10개 팀 이상이 있기도 했으나 당시에 불과 4~5팀으로 운영되었으며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2002년을 끝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팀들이 실업리그를 퇴단, 팀을 해체했고 2003년 초 제일유리의 해체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와 한국프로야구에 이중등록되어 연습경기를 가졌고, 2001년 정식으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에 참여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프로선수들의 지원율이 높다보니 1군 레귤러가 많고, 2군 선수라도 팀내에서는 이름난 유망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 2군 리그의 최강자로 자리잡았다. 2군 리그에 참여한지 2년만인 2002년에 1위를 했고,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간 북부리그 1위를 석권해 왔으나 2011년 [[경찰 야구단]]에게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1위자리를 뺏겼다. 그러나 2012년 [[경찰 야구단]]과 다시 공동으로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상을 탈환했다. 2013년부터는 부대의 [[문경시]] 이전에 따라 퓨처스리그 남부리그로 편입되었으며 2015년에 [[KBO 퓨처스리그]]가 개편됨에 따라 옐로우리그로 편입되었다가 다시 리그개편이 되면서 남부리그에 소속되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전광역시 소속으로 [[전국체전]] 일반부에 참여했다. 참여시 2년만 연고 계약을 맺을 수 있고, 연속 계약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에 결국 2018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실업팀, 금융팀, 대학팀, 상무가 모두 참가하던 [[전국종합야구선수권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